양배추·브로콜리·케일이 췌장암 예방에 좋을까? 십자화과 채소 효능과 연구 결과
건강에 좋은 채소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것이 양배추, 브로콜리, 케일입니다.
그런데 이 세 채소에는 단순히 ‘비타민이 많다’는 공통점 말고도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화과 채소(Cruciferous vegetables)라는 점입니다.
십자화과 채소에는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뿐 아니라 콜리플라워, 청경채, 방울양배추, 무, 순무, 워터크레스 등이 포함됩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가 십자화과 채소를 별도의 암 예방 정보 페이지에서 다룰 정도로 오랫동안 연구되어 온 채소군이기도 합니다.
| 신선한 녹색 채소의 효능 |
특히 최근에는 십자화과 채소 섭취와 췌장암 위험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 결과도 발표됐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브로콜리나 양배추를 많이 먹으면 췌장암을 예방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있지만, 아직 ‘췌장암 예방 효과가 입증됐다’고 말할 단계는 아닙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자화과 채소가 특별한 이유, 글루코시놀레이트
브로콜리를 씹을 때 약간 알싸하고 특유의 향이 나는 이유 중 하나가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라는 황 함유 식물성 성분 때문입니다.
채소를 자르거나 씹으면 식물 조직이 파괴되면서 미로시나아제(myrosinase)라는 효소가 작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글루코시놀레이트는 여러 생리활성 물질로 전환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많이 알려진 설포라판(sulforaphane)입니다.
브로콜리에 들어 있는 글루코라파닌(glucoraphanin)이 미로시나아제의 작용을 받으면서 설포라판으로 전환됩니다. 설포라판은 양배추와 케일 등 다른 십자화과 채소에도 존재합니다.
여기서 암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설포라판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세포 및 동물실험에서는 십자화과 채소에서 생성되는 설포라판과 이소티오시아네이트 계열 물질이 여러 암 관련 경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관찰됐습니다.
NCI가 정리한 연구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작용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 세포의 DNA 손상을 억제하는 작용
- 일부 발암물질의 불활성화 과정 지원
- 염증 반응 조절
- 비정상 세포의 세포사멸(apoptosis) 유도
- 종양이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 과정 억제
- 암세포 이동 및 전이에 관련된 과정 억제
흥미로운 기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험관에서 암세포가 억제되는 것과 사람이 브로콜리를 먹어서 암 발생률이 실제로 낮아지는 것은 전혀 다른 수준의 증거입니다.
실제로 NCI 역시 십자화과 채소에 관한 사람 대상 연구 결과는 암 종류와 연구에 따라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췌장암 연구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여기서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있습니다.
2024년 European Journal of Nutrition에 발표된 업데이트 메타분석에서는 십자화과 채소 섭취와 췌장암 발생 위험을 조사한 연구들을 종합했습니다.
총 16개 연구, 113만 명 이상의 자료가 포함됐습니다.
연구 결과 십자화과 채소를 많이 섭취한 집단은 적게 섭취한 집단과 비교했을 때 췌장암 위험이 통계적으로 낮게 나타났습니다.
종합 상대위험도는
RR 0.83
즉 단순 계산으로 표현하면 약 17% 낮은 위험과 연관됐다는 결과입니다.
이 숫자만 보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17% 예방된다’고 바꿔 쓰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관찰연구이기 때문입니다.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많이 먹는 사람은 동시에
운동을 더 많이 할 수도 있고,
흡연율이 낮을 수도 있고,
체중 관리를 더 잘할 수도 있으며,
가공육이나 초가공식품을 상대적으로 적게 먹을 수도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이런 요소들을 보정하더라도 모든 영향을 완벽하게 제거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과거 메타분석에서는 전체적으로 위험 감소가 관찰됐지만, 코호트 연구만 따로 분석하면 통계적 유의성이 사라졌던 결과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가장 정확한 표현은 이렇습니다.
십자화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식습관은 췌장암 위험 감소와 연관될 가능성이 있지만, 특정 채소가 췌장암을 직접 예방한다고 입증된 것은 아니다.
이 정도가 과학적 근거에 가장 가까운 표현입니다.
오히려 췌장암 예방에서 더 확실한 것은 따로 있다
‘췌장암에 좋은 음식’을 찾다 보면 특정 식품 하나에 집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현재 췌장암 예방에서 더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전체적인 생활습관입니다.
American Cancer Society는 췌장암을 100% 예방할 방법은 없다고 명시하면서도, 예방 가능한 위험요인 중 특히 흡연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습니다.
또한 적정 체중 유지와 신체활동, 채소·과일·통곡물을 포함하는 건강한 식습관을 권장합니다.
World Cancer Research Fund 역시 비만과 흡연을 췌장암 위험과 관련된 중요한 요인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브로콜리를 먹는 사람”보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식물성 식품을 꾸준히 먹는 사람”이라는 전체 그림이 훨씬 중요합니다.
양배추·브로콜리·케일, 각각 무엇이 좋은가?
세 채소는 같은 십자화과이지만 영양 구성은 조금씩 다릅니다.
브로콜리
대표적으로 연구되는 성분이 글루코라파닌과 설포라판입니다.
비타민 C, 비타민 K, 엽산, 식이섬유와 여러 카로티노이드도 함께 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브로콜리와 브로콜리 새싹은 설포라판 연구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케일
케일은 짙은 녹색 잎채소라는 특징 때문에 비타민 K와 카로티노이드 등을 함께 섭취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해독주스 재료’로 보는 것보다는 다양한 녹색 채소를 늘리는 식재료로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양배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생식, 찜, 볶음, 국 등으로 활용하기 쉬워 꾸준히 섭취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양배추 역시 글루코시놀레이트 계열 성분과 식이섬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결국 특별한 한 종류만 집중해서 먹기보다는 세 가지를 번갈아 먹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좋은 방법입니다.
브로콜리는 삶는 것보다 살짝 익히는 것이 나을까?
이 부분도 꽤 흥미롭습니다.
글루코라파닌이 설포라판으로 전환되려면 미로시나아제라는 효소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미로시나아제는 열의 영향을 받습니다.
가공과 조리 방법을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장시간 삶거나 데칠 경우 글루코시놀레이트와 설포라판 손실이 커질 수 있는 반면, 짧은 시간의 찜이나 전자레인지 조리는 상대적으로 유리할 가능성이 보고됐습니다.
따라서 영양성분 보존만 생각한다면
물에 오래 푹 삶기보다는 살짝 찌거나 짧게 익히는 방식이 합리적입니다.
다만 이것 역시
“3분 쪄야 항암 효과가 생긴다”
같은 공식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의 식사는 실험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 먹지 않는 생브로콜리보다 맛있게 조리해 꾸준히 먹는 브로콜리가 현실적으로는 훨씬 낫습니다.
하루에 얼마나 먹어야 할까?
현재 “췌장암 예방을 위해 브로콜리 하루 몇 g” 같은 의학적으로 확립된 섭취량은 없습니다.
오히려 전체 채소 섭취량을 보는 것이 맞습니다.
World Cancer Research Fund는 암 예방을 위한 전반적인 식생활 기준으로 비전분성 채소와 과일을 합쳐 하루 최소 약 400g, 5회분 이상 다양하게 섭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일 브로콜리만 먹기보다는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 청경채, 콜리플라워에 토마토, 당근, 버섯, 콩류 등을 섞어 식단의 다양성을 높이는 편이 좋습니다.
십자화과 채소를 많이 먹으면 부작용은 없을까?
일반적인 음식의 양으로 섭취하는 십자화과 채소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몇 가지 예외는 있습니다.
케일과 브로콜리 등 녹색 채소는 비타민 K 함량이 높기 때문에 와파린 같은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섭취량을 갑자기 크게 늘리거나 줄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NIH는 와파린 복용자는 하루 비타민 K 섭취량을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안내합니다.
또 십자화과 채소에는 갑상선의 요오드 이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이 들어 있지만, 요오드를 충분히 섭취하는 일반인이 정상적인 식사량을 먹는 것은 대체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로 요오드 섭취가 부족한 사람에게 더 고려되는 문제입니다.
즉 건강에 좋다고 해서 케일주스나 브로콜리 추출물을 극단적으로 섭취할 이유는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항암 채소’가 아니라 식습관이다
양배추, 브로콜리, 케일을 단순히 건강 채소라고만 부르기에는 꽤 흥미로운 연구가 존재합니다.
특히 십자화과 채소의 글루코시놀레이트 → 설포라판 전환 과정과 암 발생 과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여전히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4년 메타분석에서는 실제로 십자화과 채소를 많이 섭취한 집단에서 췌장암 위험이 약 17% 낮게 관찰됐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결론은
“브로콜리를 먹으면 췌장암을 예방한다”가 아닙니다.
보다 현실적인 결론은 이것입니다.
양배추·브로콜리·케일 같은 십자화과 채소를 다양한 채소와 함께 꾸준히 먹는 식습관은 건강한 체중 유지와 전반적인 암 예방 식단을 구성하는 좋은 방법이며, 췌장암 위험 감소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도 존재한다.
특정 음식 하나가 암을 막아주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반복하는 식사의 방향이 장기적인 건강 위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입니다.
꼭 확인하세요|건강정보 면책사항
이 글은 의학 논문과 공신력 있는 보건기관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일반적인 건강정보 제공 목적의 콘텐츠이며 개인의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예방하기 위한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특정 식품이나 설포라판 등의 성분이 췌장암을 치료하거나 확실하게 예방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암 치료를 음식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대체해서는 안 됩니다.
췌장암 가족력, 유전적 위험, 만성 췌장염, 당뇨병 등 개인적인 위험요인이 있거나 항응고제 등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면 식단이나 보충제를 크게 변경하기 전에 담당 의사·약사·영양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